1. 들어가는 말
○거짓말시키지 마.
문장에서 주어가 직접 동작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주동이라 하고, 주어가 남에게 동작을 하도록 시키는 것을 사동이라고 한다. 입말로 흔히 쓰이는 위의 표현은 접미사 ‘-시키다’를 넣어 사동 형태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올바르지 않은 표현으로 간주된다. 주어 ‘너’가 직접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사동문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동문 형태인 ‘(너는) 거짓말하지 마’로 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복지부는 그 방안을 이번 개정 작업에 포함시켰다.(→포함했다)
이 문장은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기자를 위한 신문언어 길잡이>(2013)에 제시된 것이다(원문을 간결하게 줄임). 이 책에서는 이 문장의 ‘포함시켰다’가 부적절한 표현이므로, ‘포함했다’로 바꾸라고 권고한다. 위의 ‘거짓말하다’와 마찬가지로 ‘포함하다’가 ‘주어가 상대에게 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주어가 직접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처럼 타동사에 ‘-시키다’를 넣어 불필요한 사동문을 만드는 예가 많다며, ‘-시키다’의 남용을 삼가도록 권유한다. 이 책에서는 남용의 예로 다음 문장들을 추가로 제시했다(원문을 간결하게 줄임).
○교통 약자 배려 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시켜야 한다.(→확대해야)
○지방의원들도 영리행위를 금지시켜야 한다.(→금지해야)
이 책이 각 신문사에 배포되었으니 일선 기자들은 이 지침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문에서는 예컨대 ‘승리 요건을 충족시켰다’를 ‘승리 요건을 충족했다’로 쓰는 것이 관행화되다시피 했다. 사실 국어원의 이 같은 견해는 일반 언어 현장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시키다’를 검색하면 ‘x시키다’는 ‘x하다’로 적어야 한다는 소위 ‘말글 바루기’ 관련 글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이 밖에 교육과정평가원 교과서 검토위원회(가칭)는 검정 합격한 일선 출판사의 교과서에 대해 수정 보완지시를 내리는데, 그 지시 내용을 보면 ‘-시키다’를 ‘-하다’로 수정토록 한 사례가 꽤 많이 발견된다. 교과서에도 충실히 반영되고 있으니 이 논리가 정설로 굳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서 검토위원회가 지적한 예를 들어 보자.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심화할)
○의지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감소할)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향상하는)
○종교인들은 당시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유지하는)
○종교는 사회를 단일한 도덕 공동체로 결속시켜 준다.(→결속해)
○예술은 감정을 순화시키고 정서를 안정시킨다.(→순화하고…안정시킨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시키다’를 익숙하게 사용해 온 일반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예컨대 국어원 묻고 답하기 코너에서 ‘-시키다’를 검색하면 ‘향상시키다, 충족시키다, 촉진시키다’ 등이 그릇된 표현인지 묻는 질문이 꽤 많은데, 이는 자신들이 늘 사용해 오던 ‘-시키다’ 표현에 애착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국어원의 답변은 한결같이 ‘향상하다, 충족하다, 촉진하다’ 등으로 적어야 옳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필자는 ‘-시키다’와 ‘-하다’의 쓰임 비교를 통해 언중의 입과 귀에 익숙한 ‘-시키다’ 표현의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위의 모든 예문에서 ‘-시키다’를 ‘-하다’로 바꿀 경우 어법에 위배될 수 있으며, 의미의 훼손도 초래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들 단어는 ‘거짓말시키다’와 성격이 달라서 반드시 주동문으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시키다’와 ‘-하다’의 쓰임 차이
국어원은 ‘-시키다’를 ‘-하다’로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주어가 직접 행위를 하는 문장’(주동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장의 서술어로 쓰인 동사가 사동의 뜻을 지닌 경우에만 한정하는 것으로서, 이 경우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시키다’를 넣으면 의미의 중복이 온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를 하나씩 검토해 보자.
㉠복지부는 그 방안을 이번 개정 작업에 포함했다.
㉡복지부는 그 방안을 이번 개정 작업에 포함시켰다.
국어원은 ‘포함하다’가 타동사라는 인식 아래 ㉠의 ‘복지부는 ~을 포함했다’가 가능한 표현이라고 보고 이를 권하고 있다. 즉 ‘주어가 직접 행위를 하는 주동문’이므로 굳이 ㉡처럼 ‘포함시키다’라는 사동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실 사전의 풀이를 보면 ‘포함하다’가 ‘넣다’라는 뜻을 지닌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포함하다’ 대신 ‘넣다’를 대입하면 ‘A는 B를 넣었다’가 되고, 이는 주어가 직접 행위를 하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그런데 다음 문장을 살펴보자.
ⓐ우리 영토는 독도를 포함한다.(=독도는 우리 영토에 포함된다.)
ⓑ정부는 독도를 우리 영토에 포함했다.
ⓒ정부는 독도를 우리 영토에 포함시켰다.
‘포함하다’가 ‘넣다’라는 의미를 가진다면 ⓐ는 ‘우리 영토는 독도를 넣는다’는 문장으로 대체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찌 보면 ‘포함하다’가 ‘넣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포함하다’는 수학에서 ‘A가 B를 포함하다’ 등의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데, 이는 ‘A라는 대집합이 B라는 소집합을 끌어안은 관계에 있다’라는 의미이며 이때의 ‘끌어안음’은 동작성이 아닌 상태성을 나타낸다. 즉 ‘B가 A에 소속된 상태’라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넣다’는 주로 동작성을 지니므로 이 문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이 문장에서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포함하다’가 들어간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 간 관계이다. 즉 ‘A가 B를 포함하다’에서 A와 B는 서로 포함 관계에 있는 것이다. ⓐ를 예로 들면 A는 포함자인 ‘우리 영토’이고 B는 피포함자인 ‘독도’이다. 그런데 ⓑ는 이런 포함 관계에 있지 않다. ⓑ에서는 A에 해당하는 ‘정부’가 포함자가 아닌 행위의 주체로 쓰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포함하다’의 특성이 잘 반영된 글로는 미흡한 면이 있다. 이와 비슷한 예문으로 ‘총알이 과녁을 명중했다’를 들 수 있겠는데, 이를 ⓑ처럼 변형하여 ‘그가 (총알을) 과녁에 명중했다’로 표현하면 불안정한 문장이 된다. 이 경우엔 ⓒ처럼 ‘-시키다’를 넣어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호응되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이번 출전 팀은 아무개를 포함한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면 ‘출전 팀’이 A가 되고 ‘아무개’가 B가 되므로 포함 관계가 성립한다. 그리하여 ‘이번 출전 팀이 아무개를 포함한 상태’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아무개가 출전 팀에 포함된 상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를 ‘이번 출전 팀이 아무개를 집어 넣는다’처럼 주어가 직접 행위를 하는 문장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위의 예문만 보더라도 국어원의 논리에 허점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겠거니와 논의의 초점을 ‘주어가 직접 행위를 하는 상황’에 대한 반론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른 예문을 살펴보자.
㉢철수는 영희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철수는 영희와의 약속을 취소시켰다.
㉢에서 ‘취소하다’는 주어인 철수가 직접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는 적절한 표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키다’를 넣은 ㉣을 부적절한 문장으로 보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과 ㉣은 둘 다 가능한 표현이다. 뉘앙스가 다를 뿐이다. 그 근거는 다음 예문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신이 가서) 내 발언 좀 취소해 주세요.
ⓑ(당신이 가서) 내 발언 좀 취소시켜 주세요.
ⓒ나는 내 발언을 취소했다.
ⓓ나는 내 발언을 취소시켰다.
ⓐ와 ⓑ에서 ‘취소’의 주체는 ‘당신’이다 그런데 정황상으로 보자면 ‘나’의 발언을 취소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의 발언을 다른 사람이 취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 ‘취소해’라는 표현은 매우 낯설다. 언중이 ⓑ를 선호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제 ⓒ와 ⓓ를 비교해 보자. ⓒ는 흔히 쓰는 표현이다. 반면 ⓓ는, 국어원의 주장을 따른다면 버려야 할 표현에 해당한다. ‘취소’의 주체가 ‘나’이므로 ‘-시키다’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처럼 누군가를 시켜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도록 부탁한 상황에서 그 부탁이 이루어졌다면, 즉 ⓑ의 행위를 한 이후 그 결과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라면 ⓒ보다는 ⓓ가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는 ‘나는 내 발언을 다른 사람을 시켜 취소했다’라는 뜻이 되며, 이는 자신이 직접 발언을 취소한 ⓒ와는 의미가 다르다. 작은 결론을 말하자면 ‘취소하다’를 사용한 ㉢과 ⓒ는 ‘주어가 직접 하는 행위’의 문장이다. 그리고 ‘취소시키다’를 사용한 ㉣과 ⓓ는 ‘주어가 간접적으로 하는 행위’의 문장이다. 둘 다 사용 가능한 표현이며, 뉘앙스가 다를 뿐이다.
이번에는 두 번째 논거, 즉 서술어로 쓰인 동사가 사동의 뜻을 지닐 때는 접미사 ‘-시키다’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 대해 살펴보자. 국어원 묻고 답하기 코너에서 ‘-시키다’의 사용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시키다’와 결합한 동사가 사동의 뜻을 지닌 것이다. 그런 동사들로는 ‘충족하다, 촉진하다, 포함하다, 가동하다, 오염하다, 심화하다’ 등이 있다. 이런 단어들에 대한 국어원의 견해를 옮겨 보자.
○‘충족하다’는 “일정한 분량을 채워 모자람이 없게 하다.”와 같이 ‘-게 하다’라는 사동의 뜻을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시키다’를 붙이지 않고, ‘충족하다’로 쓴다.
○''오염하다'는 '더럽게 물들다.' 또는 '더럽게 물들게 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매연이 환경을 더럽게 물들게 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매연이 환경을 오염했다.'를 쓸 수 있다.
○‘심화하다’가 사동적인 의미로 ‘지식을 심화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했다.’와 같은 맥락에 쓰이므로 ‘심화하다’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
국어원은 이런 단어에 ‘-시키다’를 붙이면 의미가 같은 말을 중복되게 표현한 일종의 겹말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형태론적으로만 접근한 것으로, 통사적인 면을 간과한 것이다. 형태론적인 접근과 통사론적인 접근은 어떻게 다른가.
ⓐ서울시가 이곳을 공원화하였다.
ⓑ이곳은 서울시에 의해 공원화되었다.
ⓒ이곳은 서울시에 의해 공원화하였다.
형태론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 중 일부는 ‘-화되다’를 비논리적인 표현으로 간주한다. 한자어 ‘화(化)’가 ‘될 화’이므로, ‘-화되다’는 ‘되다’라는 의미가 중복되게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 피동 표현으로는 ⓑ와 ⓒ 중에서 ⓒ를 선호한다. 하지만 통사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은 ⓑ를 선호한다. 피동접사 ‘-되다’를 넣어 피동 표현임을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기로는 ⓑ가 ⓒ보다 낫다. 이는 피동의 예이지만, 사동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인다.
ⓓ서울시가 그 회사에 이곳을 공원화하였다.
ⓔ서울시가 그 회사에 이곳을 공원화하도록 하였다.
ⓕ서울시가 그 회사에 이곳을 공원화시켰다.
ⓖ서울시가 그 회사를 시켜 이곳을 공원화하였다.
위의 예문은 ‘서울시가 이곳을 공원화하였다’라는 문장을 사동문으로 만든 것이다. 사동문의 전형적인 예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찌하게 하다’라는 형태를 띤다. 여기서 ‘누가’는 사동주, ‘누구에게’는 피사동주가 된다. 예문엔 피사동주 ‘그 회사에’가 들어가 있다. 이 문장에서 ‘공원화하다’는 ‘공원이 되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사동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이 단어에 ‘-시키다’를 넣을 경우 의미의 중복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처럼 ‘-시키다’를 넣지 않고 보니 매우 어색하다. 피사동주와 호응되는 사동형 서술어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사동문 형태를 만들려면 ⓔ, ⓕ, ⓖ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동의 의미가 들어간 동사에는 사동 접미사 ‘-시키다’를 덧붙일 수 없다는 국어원의 논리는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3. ‘-시키다’의 의미 기능과 문법 기능
㉠복지부는 그 방안을 이번 개정 작업에 포함했다.
㉡복지부는 그 방안을 이번 개정 작업에 포함시켰다.
앞서 제시한 국어원의 예문을 다시 옮긴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국어원은 ㉠과 ㉡이 모두 주어가 직접 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에 대한 반론으로 ‘약속을 취소시켰다’와 ‘발언을 취소시켰다’라는 제시문을 통해 두 문장이 다른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즉 ‘-시키다’ 문장은 주어가 직접 하는 행위가 아닌 간접적으로 하는 행위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어가 직접 하는 행위인가 간접적으로 하는 행위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실 ㉡의 경우 주어가 직접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황상으로 볼 때 ‘포함하다’의 행위 주체는 ‘복지부’가 아닌 다른 기관(또는 사람 등 기타 유정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포함하는 행위를 직접 한 게 아니라 ‘포함하도록(또는 포함되도록) 어떤 조치를 취했다’라는 뜻에 가까우므로 직접성의 정도는 약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직접성의 정도는 의미상 ‘-시키다’와 ‘하다’를 구별되게 하는 또 하나의 관점으로 작용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 공장은 기계 가동을 중단했다.(○)
㉣그 공장은 기계 가동을 중단시켰다.(?)
㉤사장은 기계 가동을 중단했다.(?)
㉥사장은 기계 가동을 중단시켰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기계를 가동하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주체는 공장이다. 공장이 그런 행위를 직접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장을 주어로 내세울 경우엔 ㉢처럼 주동문을 써서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며, ㉣처럼 사동문 ‘중단시켰다’로 할 이유가 없다. 반면 사장은 공장을 운영할 뿐 기계를 직접 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장을 주어로 내세울 경우엔 ㉤처럼 주동문 형태로 하기 어려우며, ㉥처럼 사동문으로 만드는 게 타당하다. 즉 주어의 직접성의 정도에 따라 주동문, 사동문의 선택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볼 게 있다. 이때의 ‘-시키다’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시키다’가 ‘-하게 하다’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사전에도 그렇게 풀이되어 있다. ‘-시키다’ 문장이 사동의 의미를 지닌다거나 사동문을 만든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예문 중 ‘가동을 중단시켰다’는 ‘가동을 중단하게 하다’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 ‘포함시키다’는 이처럼 ‘하게 하다’로 대체하여 ‘(방안을) 포함하게 하다’로 표현하면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보다는 ‘(방안이) 포함되게 하다’로 표현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즉 ‘포함시키다’를 ‘포함되다’라는 자동사에 ‘-게 하다’가 붙은 꼴로 해석하는 것이다. ㉥ 역시 타동사형 ‘가동을 중단하게 하다’도 가능하지만 자동사형 ‘가동이 중지되게 하다’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이 형태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다음 예문도 마찬가지이다.
㉧강물을 오염시켰다.
→①강물을 오염하게 했다.
→②강물이 오염되게(오염되도록) 했다.
㉨나는 내 발언을 취소시켰다.
→①나는 내 발언을 취소하게 했다.
→②나는 내 발언이 취소되게/취소되도록 (조치)했다.
이들 문장을 보면 ①보다는 ②의 의미가 더 자연스럽다. 특히 ㉨의 두 문장 사이에는 뉘앙스 차이가 엿보인다. ㉨의 ①은 누군가를 시켜서 나의 발언을 취소하도록 했다는 의미가 강하고, ②는 내가 직접 나서서 나의 발언이 취소되도록 조치했다는 의미가 강하다. 다시 말하면 ②에는 ‘누군가를 시켜서’라는 표현이 빠져 있다. 피사동주가 없는 문장인 것이다. 만약 어느 화자가 ㉧처럼 말을 했다면 그것은 ②와 같은 의도에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시키다’ 형태를 ‘하게 하다’로 바꿀 경우 위의 ㉧-1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반면 ‘되게 하다’나 ‘되도록 하다’로 바꿀 경우 아래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색함을 느끼기 어렵다.
○~을 재개시켰다→~이 재개되게/재개되도록 (영향력을 행사) 했다
○~을 추진시켰다→~이 추진되게/재개되도록 했다
○누구를 이해시켰다→누가 이해되게/이해되도록 했다
○~을 중지시켰다→~이 중지되게/중지되도록 했다
○~을 통일시켰다→~이 통일되게/통일되도록 했다
○누구를 석방시켰다→누가 석방되게/석방되도록 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자동사의 경우 ‘하게 하다’로 바꾸면 더 자연스럽다. 예컨대 ‘저를 좀 인사시켜 주세요’의 경우 ‘제가 인사될 수 있게 해 주세요’보다는 ‘제가 인사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그를 출석시켰다’도 ‘그를 출석하게 했다’가 낫다. 요컨대 ‘시키다’는 ‘하게 하다’와 ‘되게 하다’ 중 어느 한 가지 의미로 쓰인다고 할 수 있겠다.
4. ‘소개시키다’를 위한 변명
‘-시키다’가 ‘되게 하다’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시키다’ 문형의 사용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나 좀 소개해 줘.
㉡나 좀 소개시켜 줘.
㉡의 ‘소개시키다’는 국어 교과서에서도 버려야 할 표현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안다. ‘소개’란 단어에 사동의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키다’가 ‘되게 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면 ㉡는 ‘내가 좀 소개되도록 해 줘’ 라는 의미가 된다. 즉 ㉠은 대화 상대로 하여금 제삼자에게 나를 소개하도록 해 달라는 뜻이고, ㉡은 대화 상대로 하여금 내가 제 삼자에게 소개되도록 다리를 놓아 달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소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 주체는 대화 상대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나 좀 소개시켜 줘’라고 했다면 그것은 ㉠처럼 나를 직접 소개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개되도록 다리를 놓아 달라’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회사 업무를 보다 보니 다음 글이 보인다.
○애플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전자 일부 제품을 미국 내에서 판매 금지해 달라고 청구한 가처분 소송에서 삼성이 승소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시키다’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잘 숙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금지시켜’를 쓰지 않고 ‘금지해’를 썼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애플이 판매를 금지해 달라고 청원한 곳은 법원이다. 즉 법원더러 제품을 판매하지 말라고 청원하는 셈이다. 법원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법원이 할 수 있는 권한은 삼성의 판매를 금지토록 조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매가 금지되게 해 달라’고 신청해야 한다. 그러자면 ‘판매 금지시켜 달라고’라고 하는 게 옳다. ‘-시키다’의 남용을 자제할 것이 아니라 ‘-하다’를 남용을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이 글 첫머리에 제시한 교과서 검토위원회의 검토 의견서 관련 문장들을 다시 옮겨 검토 의견대로 ‘-시키다’를 ‘-하다’로 바꾸어 보자. 또 ‘-시키다’를 ‘되게/되도록 하다’로 바꾼 뒤 두 표현을 서로 비교하여 보자. 양자의 의미 차이 및 표현의 자연스러움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맡긴다.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할 수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더욱 심화되게 할 있습니다.
○의지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의지를 감소할 수 있습니다.
→의지가 감소되게 할 수 있습니다.
○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모임에서 퇴출시키기로 하였다.
→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모임에서 퇴출하기로 하였다.
→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모임에서 퇴출되도록 하였다.
*'퇴출'은 주체의 자발성이 없는 말이므로 현실 언어에서 '퇴출하다'는 잘 안쓰이며 '퇴출되다', '퇴출시키다'로 발현되는 경향이 강함. '그는 모임에서 스스로(자발적으로) 퇴출하였다'(?)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
○종교인들은 당시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종교인들은 당시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종교인들은 당시 사회의 질서와 조화가 유지되도록 하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종교는 사회를 단일한 도덕 공동체로 결속시켜 준다.
→종교는 사회를 단일한 도덕 공동체로 결속해 준다.
→종교는 사회가 단일한 도덕 공동체로 결속되도록 해 준다.
○예술은 감정을 순화시키고 정서를 안정시킨다.
→예술은 감정을 순화하고 정서를 안정시킨다.
→예술은 감정이 순화되도록 하고 정서가 안정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