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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 쓰임-은는이가] ‘은/는’과 ‘이/가’는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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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한 농부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위의 문장이 옛날이야기 글의 첫머리라고 한다면 어떨까. ‘농부는’을 ‘농부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조사 ‘은/는’과 ‘이/가’를 구별해 쓴다. 어떤 기준에 의해 구별하는 것일까.

첫째, 주어를 처음 소개할 때는 ‘이/가’를 쓴다. 예문이 그런 경우로서, 이때는 ‘농부는’ 대신 ‘농부가’를 써야 한다.

둘째, ‘은/는’은 비교·대조를 나타낼 때 쓴다. ‘철수는 거기에 가지 않았다’가 그러한 예이다. 이 경우 ‘철수는’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철수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제시문이 어색한 이유도 ‘농부는’이 대조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이 경우 ‘다른 농부가 아닌 어떤 한 농부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예문은 옛날이야기의 첫머리 글이므로 이런 의미를 나타낼 이유가 없다.

셋째, 이미 아는 주어라도 그 주어를 강조할 때, 곧 관심의 초점을 주어에 둘 때는 ‘이/가’를 쓴다. 반면 ‘은/는’은 술어부를 강조할 때, 곧 관심의 초점을 서술부에 둘 때 쓴다.

 

① “철수가 일등이래.” “뭐, 철수가?”

② “영희는 꼴찌래.” “뭐, 꼴찌라고?”

 

①은 주어에 ‘가’가 붙었고, ②는 주어에 ‘는’이 붙었다. 이처럼 조사를 다르게 썼더니 답변이 달라졌다. 즉 ①은 주어 쪽에 관심이 쏠려 “뭐, 철수가?”라고 반문했고 ②는 술어 쪽에 관심이 쏠려 “뭐, 꼴찌라고?”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로써 ‘이/가’는 관심의 초점이 주어에 있을 때 사용하고, ‘은/는’은 관심의 초점이 술어에 있을 때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옛날에 한 농부가 살았다. 농부가 매우 가난했다.

 

이 예문은 두 번째 문장의 ‘농부가’가 어색하다. ‘농부는’으로 해야 한다. 이미 앞에서 ‘농부’를 관심의 초점으로 삼기 위해 주어를 ‘농부가’라고 표현했으므로 여기서 또다시 농부를 관심의 초점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가난했다’에 관심의 초점을 두기 위해 ‘농부는’을 쓰는 것이다.

넷째, ‘은/는’ 설명문에, ‘이/가’는 묘사문에 쓴다.

 

③ 사람은 누워서 잔다,

④ 사람이 누워서 잔다.

 

③은 주어에 ‘은/는’이 붙고, ④는 ‘이/가’가 붙었다. 그런데 이 차이가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갈랐다. ③은 ‘사람’이 어떤 행위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④는 ‘사람’이 지금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묘사하고 있다.

 

⑤ 대통령이 식목일을 맞아 청와대 뒷산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⑥ 대통령은 식목일을 맞아 청와대 뒷산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

 

신문의 사진 설명 글이다. 대통령이 나무 심는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행위를 묘사할 때는 ⑤처럼 주어를 ‘대통령이’로 해야 한다. ⑥처럼 ‘대통령은’으로 하면 비교·대조의 의미를 지니게 되므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되고 만다.

 

⑦ 대통령은 식목일을 맞아 청와대 뒷산에서 나무를 심었다.

⑧ 대통령이 식목일을 맞아 청와대 뒷산에서 나무를 심었다. (?)

 

이것은 사진 설명 글이 아니고 일반 기사 문장이다. 대통령이 나무 심은 사실을 전달하는 글이다. 이 경우는 ⑦처럼 ‘대통령은’으로 하는 게 올바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대통령은’이라는 비교·대조의 의미가 담기게 된다. 또 관심의 초점은 서술부의 ‘나무를 심었다’에 있게 된다. 만약 ⑧처럼 표현하면 관심의 초점이 주어에 있게 되어 의도치 않게 ‘대통령’을 강조하고 만다. 즉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더 알아보기>

철수가 영희를 좋아하는데 영희는 철수를 싫어한다. (→철수는 : 비교/대조)

• 서울시 관계자가 이번 사건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 술어부에 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