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말 어디까지
• 그는 주로 역사책을 자주 애독한다.
‘그는 열심히 공부에 열중했다’라는 표현을 보자. ‘열심히 열중했다’가 어색함을 준다. ‘열중(熱中)하다’의 ‘열(熱)’에 ‘열심히’라는 뜻이 있어서 같은 말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를 겹말이라 한다. 겹말을 피해 ‘열심히 공부했다’로 표현하는 게 좋다.
표현이 겹친다고 해서 늘 어색한 것은 아니다. ‘처갓집’은 ‘처가(妻家)’의 ‘가(家)’가 집을 뜻하므로 ‘집’이라는 말이 반복됐지만 ‘처가’보다 더 많은 사용자층을 가지고 있다. ‘집’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처가’의 의미를 더 명확히 하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악취 냄새’는 ‘악취’나 ‘고약한 냄새’로, ‘돈을 송금하다’는 ‘돈을 보내다’나 ‘송금하다’로 쓰는 게 좋다.
제시문의 두 번째 문장도 의미가 겹치는 곳이 있어서 불안정해 보인다. ‘주로’와 ‘자주’와 ‘애독하다’의 ‘애(愛)’가 그것이다. ‘주로 읽다’와 ‘자주 읽다’와 ‘즐겨 읽다’는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보면 ‘애독한다’라는 뜻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겹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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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말(겹치기 표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어떤 이는 절대 피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일부는 허용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 또 이어령 같은 이는 “황토흙, 처갓집, 동해바다 등과 같은 표현이야말로 살아있는 한국어”라고 주장했다. 처갓집과 동해바다는 ‘한자말+우리말’의 용법으로 확인과 강조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기실 ‘처갓집’의 경우 ‘가’와 ‘집’이 같은 의미를 갖지만 주된 의미 기능을 하는 것은 ‘집’이고 ‘가’는 보조적인 기능을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집’은 강조 또는 확인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형태인 ‘10여년 이상’이란 표현을 보자. 이 경우 ‘여’와 ‘이상’이 비슷한 비중의 의미 기능을 한다. 이는 우리의 일상 표현에서 ‘10여명’과 ‘10명 이상’이 공존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표현은 의미의 중복이 현저하게 느껴진다. 이런 표현은 피하는 게 좋다.
♣사족 표현(1)…중언부언, 군더더기
• 성실이란 의미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정성과 최선을 다해 애써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세상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게 많다. 사람의 마음도 그중 하나이다. 특히 마음의 진정성까지 말로 확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컨대 간단히 ‘좋아한다’라고 하면 될 것을 ‘진짜 좋아한다’로 덧칠하고, 그것도 부족한 듯 ‘진짜,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좋아한다’라고 개칠한다.
그런데 ‘진짜’와 ‘정말’과 ‘거짓말 하나 안 보태서’는 결국 같은 말이다. 셋 중 어느 하나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사족인 셈이다. 하지만 그 나머지 말도 문장 내에서 나름의 기능을 한다. 강조의 기능이다. 따라서 무조건 사족으로만 몰고 갈 일은 아니고, 글의 성격에 따라 용인할지 말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가벼운 대화체 문장에서는 이런 표현이 글의 맛을 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간결성을 추구하는 설명문 등에서는 아무래도 사족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제시문에서 중언부언에 해당하는 것은 ‘정성’과 ‘최선’, 그리고 ‘최선을 다해’와 ‘애써’이다. 즉 원문의 ‘정성과 최선을 다해’는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가 줄어든 형태인데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곧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와 ‘애써 노력한다’도 같은 말을 표현만 바꾼 것이다. 다음처럼 표현하면 간결하고 짜임새 있게 된다.
☞ 성실이란 의미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일상의 표현에서 중언부언이나 사족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 지구상에서 이기적인 종족은 사라지고, 이타적인 종족은 번성하고 살아남았다.
☞ …이타적인 종족은 번성했다.
‘번성하다’에 ‘살아남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두 단어를 대등적으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살아남아 번성했다’라고 할 수는 있겠다.
• 소득이 있어야 가족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
☞ 소득이 있어야 가족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
☞ 소득이 있어야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은 같은 개념이다. 글쓴이는 ‘필요한 것’을 상품으로 보고, ‘원하는 것’은 상품 이외의 서비스로 보아 양자를 구분한 듯한데, 이 글 자체로는 그렇게 구분되어 읽히지 않는다.
• 귀양살이 중에도 늘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마하며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 귀양살이 중에도 늘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마했다.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며’와 ‘열심히 공부하였다’는 결국 같은 말이므로 ‘…하며’로 연결하기 어렵다.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마했다’ 정도로만 표현해도 충분하다. 그 안에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면 신뢰가 쌓인다.
☞ 약속을 잘 지키면 신뢰가 쌓인다.
☞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면 신뢰가 쌓인다.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같은 말이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쓰면 된다.
♣사족 표현 (2)…계륵
•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우리 지역으로 외국인이 들어오면 어떤 점이 좋을까.
글을 쓰다 보면 꼭 넣고 싶은 말이 있는데 넣을 자리가 마땅치 않을 때가 있다. 계륵인 셈인데, 그걸 버리지 못하고 어디엔가 쑤셔 넣으면 사족이 되기 십상이다. 제시문의 ‘외국인이’가 그에 해당한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사람이) 들어오면’이라는 표현에 녹아 들어 있는 말이다. ‘돈 많은 사람’을 ‘돈 많은 부자’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
☞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 지역으로 들어오면 어떤 점이 좋을까.
이처럼 ‘외국인’이란 표현을 과감히 버린다. 굳이 ‘외국인’을 넣고자 한다면 ‘세계 여러 나라…’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세계 각지의 외국인이 우리 지역으로 들어오면’으로 시작하는 글을 만들 수 있겠다.
• 현재 남아 있는 인쇄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은 《직지심체요절》이다.
☞ 현재 남아 있는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은 《직지심체요절》이다.
‘금속활자본’이라는 말에 ‘인쇄된 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