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형이냐 피동형이냐(1)
㉠ 엇갈린 주장을 펼치며 벌어지는 설전이 흥미롭다.
㉡ 엇갈린 주장을 펼치며 벌이는 설전이 흥미롭다.
㉠의 ‘벌어지는 설전’과 ㉡의 ‘벌이는 설전’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주어에 있다. 즉 주술 관계가 제대로 맺어져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예문은 주어가 생략되었는데, 그 주어를 넣고 앞부분을 따로 떼어 내면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엇갈린 주장을 펼치며 벌어지는 설전.
㉡-1 그들이 엇갈린 주장을 펼치며 벌이는 설전.
㉠-1는 주술 관계만 놓고 보면 ‘그들이 설전이 벌어지다’가 된다. 이는 ㉡-1의 ‘그들이 설전을 벌이다’라는 표현과 비교하면 매우 어색하다. 나아가 ‘그들이…벌어지다’는 주어와 술어가 호응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제시문 ㉠은 바른 표현이 될 수 없다.
접근 방식을 달리해 보자. ㉠-1은 ‘그들이 …을 하며 …이 되다’ 꼴이다. 앞 절은 능동문이고 뒤 절은 피동문이어서 일관성이 없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가 여럿 딸릴 경우에는 각 서술어의 문형이 일치되어야 한다.
또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이 문장은 ‘-(하)며’로 연결된 문장이다. ‘-(하)며’로 연결되는 문장은 앞뒤 절의 주어가 같아야 한다. 동시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철수가 노래를 부르며 춤춘다.
㉯ 철수가 노래를 부르며 영희가 춤춘다. (?)
두 문장 중 앞뒤 절의 주어가 다른 ㉯는 비문이다. 주어를 달리하려면 ‘부르며’를 ‘부르고’로 바꾸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1도 앞 절의 주어는 ‘그들이’이고 뒤 절의 주어는 ‘설전이’이어서 비문이 된다.
<더 알아보기>
•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펼쳐지는 경기가 스릴 만점이다.
☞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펼치는 경기가 스릴 만점이다.
• 부부가 자녀의 진학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 부부가 자녀의 진학 문제를 두고 엇갈린 의견을 보인다.
☞ 부부가 자녀의 진학 문제를 두고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능동형이냐 피동형이냐(2)
• 그들의 적극적인 캠페인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이 글은 ‘캠페인을 통해’가 뒷말과 잘 호응되지 않는다. ‘…를 통해’는 타동사형으로서 ‘어떤 과정이나 경험을 거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경우 서술 방식이 일관성을 띠도록 뒷말도 타동사형 ‘…를 하다’ 꼴로 만들어야 한다.
①-1 나눔을 통해 봉사를 실천했다.
①-2 나눔을 통해 봉사가 실천되었다. (?)
②-1 출토물을 통해 당시 생활 모습을 엿본다.
②-2 출토물을 통해 당시 생활 모습이 엿보인다. (?)
①-2와 ②-2에서 보듯 ‘통해’ 뒤에 피동형이 오면 문맥이 틀어진다. 제시문도 뒷부분 ‘인식이 달라졌다’가 피동형이다 보니 ‘통해’와 대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 뒷부분은 핵심 문장이므로 그대로 두고 앞부분 ‘통해’를 바꾸는 게 좋다.
☞ 그들의 적극적인 캠페인 덕분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 그들의 적극적인 캠페인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통해’ 뒤에 피동형 문장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주로 ‘무엇이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다’ 꼴로 된다.
• 중매를 통해 두 사람이 맺어졌다.
• 제삼자를 통해 계약이 성사됐다.
<더 알아보기>
•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매출이 올랐다.
☞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매출을 늘렸다.
☞ 적극적인 홍보를 한 결과 매출이 올랐다.
♣능동문과 피동문의 차이
• 내년부터 서울시의 모든 공원에 금연 구역을 설치한다.
서울시에 출입하는 새내기 기자가 첫 문장을 이처럼 써서 송고했더니 본사의 베테랑 선배가 다음처럼 고쳤다.
☞ 내년부터 서울시의 모든 공원에 금연 구역이 설치된다.
베테랑 선배는 왜 이처럼 고쳤을까. 제시문에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주어는 필요에 따라 생략할 수도 있지만 제시문처럼 글의 서두에 놓이는 문장에는 대부분 주어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주어를 넣는다면 우선 다음과 같은 표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내년부터 서울시가 서울시의 모든 공원에 금연 구역을 설치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서울시’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동어반복형이어서 세련미가 떨어진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뒷말인 ‘서울시의’를 삭제하면 장소의 구체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수정문처럼 피동문으로 만든 것이다.
피동문으로 바꾼 이유는 또 있다. 일반적으로 주어는 그 글의 핵심어이다. 곧 가장 관심이 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핵심어는 ‘금연 구역’이지 ‘서울시’가 아니다. 따라서 ‘금연 구역’을 주어로 내세워야 더 힘이 있는 글이 된다.
♣피동형 서술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형
• 사랑한다는 이유로 간섭이 더 심해졌다.
이 문장은 앞말인 ‘사랑한다는 이유로’와 뒷말인 ‘간섭이 심해졌다’가 잘 호응되지 않는다. 다음처럼 뒷말을 타동사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 사랑한다는 이유로 더 심하게 간섭했다.
호응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부사어 ‘이유로’가 ‘이유를 들어’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런 의미로 쓰일 때는 흔히 다음 문형이 생겨난다.
• (누가) 어떤 이유를 들어 무엇을 어찌하다.
이 문형의 특징은 문두의 주어가 문장 전체의 주어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어 하나가 술어 두 개를 거느리게 된다. 이 경우 앞뒤 서술어는 형태가 동일하다. 즉 앞말 ‘이유를 들어’가 타동사형이므로 뒷말도 타동사형이 된다.
만약 ‘이유로’가 ‘이유를 들어’가 아닌 ‘이유 때문에’라는 의미로 쓰였다면, 문장 중간에 다른 주어가 놓일 수 있다. 아래 문장이 그러한 예이며, 이 경우 뒷말을 타동사문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 (그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반장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문형으로 ‘…를 두고’, ‘…를 놓고’ 등이 있는데, 이들 문장 역시 중간에 주어가 바뀌면 불안정해진다.
•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의 다툼이 시작됐다.
☞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다투기 시작했다.(=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 성과연봉제를 놓고 노사의 대립이 심하다.
☞ 성과연봉제를 놓고 노사가 심하게 대립한다.(=노사가 성과연봉제를 놓고 심하게 대립한다.)
♣피동형에는 못 쓰는 ‘… 중이다’
• 중국 공안 당국에 억류 중인 탈북자들이 많다.
‘방법을 검토 중이다’는 자연스럽고 ‘방법이 검토 중이다’는 부자연스럽다. ‘검토 중이다’는 ‘검토하는 중이다’의 준말로 인식된다. 피동형 ‘검토되는 중이다’로는 잘 읽히지 않는다. 제시문도 ‘당국에 억류된’이라는 피동의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억류 중인’을 쓸 수 없다.
☞ 중국 공안 당국에 억류된 탈북자들이 많다.
<더 알아보기>
• 그 사건의 해결책이 논의 중이다.
☞ 그 사건의 해결책을 논의 중이다.
☞ 그 사건의 해결책이 논의되고 있다.
• 현재 2단계 사업이 추진 중이다.
☞ 현재 2단계 사업을 추진 중이다.
☞ 현재 2단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잡은 물고기와 잡힌 물고기
• 오전부터 치르는 시험은 오후까지 이어진다.
능동형 ‘치르는’으로 할 것인가, 피동형 ‘치러지는’으로 할 것인가. 옳고 그름을 떠나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고르라면 ‘치러지는’을 택한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시험은’을 주어로 하는 다음 두 문장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시험은 오전부터 치러진다.
㉯ 시험은 오후까지 이어진다.
㉮+㉯ 오전부터 치러지는 시험은 오후까지 이어진다.
물론 ‘치르는’도 못 쓸 건 아니다. 이 경우에는 관형절의 주어 ‘우리가’가 생략된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치러지는’에 비해 덜 안정적일 뿐이다. 예컨대 다음 두 문장은 어느 쪽이 더 선호된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대등적인 사용 빈도를 보인다.
㉠ 잡은 물고기가 몇 마리냐?
㉡ 잡힌 물고기가 몇 마리냐?
하지만 더 문법적인 것은 ㉡이며, ㉠은 구어체 등에서 예외적으로 쓰인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제시문을 ㉠처럼 쓸 경우 다음처럼 주어를 밝혀 주는 게 좋다.
☞ 우리가 오전부터 치르는 시험은 오후까지 이어진다.
<더 알아보기>
• 1971년 출시한 새우깡은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 1971년 출시된 새우깡은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 그 회사가 1971년 출시한 새우깡은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 새우깡은 1971년 출시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 새우깡은 1971년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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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방종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방종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 그는 우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쉽게 준우승했다.
☞ 그는 우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쉽게 준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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